문우의 책

요즘 봄이라고 하기에는 변스러운 날씨의 연속입니다.
기온이 뚝 떨어지거나 비가 내렸다가 그쳤다가, 여하튼 지금까지 체험한 봄과는 아주 거리가 멀게 느껴집니다. 이것도 환경 변화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 군요. 아무쪼록 우리가 사는 세상, 늘 맑은 기운이 흘렀으면 좋겠습니다.

동도제현(同道諸賢)의 귀한 작품집을 받을 때 가슴이 화하게 기쁘던 일들이 오늘 저에게는 커다란 미안함과 부담으로 돌아옵니다.
저의 졸저인 첫 수필집 ‘가족별곡’이 나왔습니다. 제가 2002년에 등단하였으니 첫 작품집이 좀 늦었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작품집 한 권 출간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도 되겠지요.

막상 작품집 출간을 준비하자니 여러 가지가 밟혔습니다. 그 가운데 함께 고생하며 일하는 두 수필가가 자꾸 마음에 걸리더군요. 이 두 분도 작품은 많으나 첫 작품집이 없는데다 출판사에서 일을 하는 데도 솔직히 언제 첫 작품집을 낼 지 기약이 없는 상황입니다. 함께 일하는데 도저히 미안해서 혼자 작품집을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 혼자 낼 분량을 나누어 소량으로 셋이 같이 내는 방법을 찾아보자.’

결국 작품집은 출간하였지만 최소 서점 유통분만 변칙적으로 출간하였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세 사람은 작품집이 나와도 존경하는 수필문단의 선․후학께나 친한 지인에게조차 한 권씩 돌리며 상재 인사를 못 드리게 되었습니다. 아주 소량이어서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눈 질끈 감고 맙니다.
머리 숙여 깊은 이해를 구합니다. 참 죄송합니다.

대신, 저의 경우 혹여 책이 조금이라도 팔린다면 판매 수익의 일부(판매가의 50%)를 비축해 두었다가 저희처럼 작품은 있으나 형편상 첫 작품집을 출간하지 못하고 있는 동료 수필가들을 위해 지원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이런 기획을 좀 더 연구하여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올해는 ‘독자를 향한’ 좋은 원고를 발굴하여, 함께 활동하는 동도제현의 작품집 출간을 도와줄 수 있는 해드림출판사가 되기를 꿈꿉니다. 희망을 갖고 노력하면 이 기획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작은 울림에서 반향의 파문이 이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지금껏 귀한 작품집을 수 없이 받았는데 정작 제 작품집은 보내드리지 못할 형편이니 이래저래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다시 한 번 깊은 이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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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전자우편이 날아왔다.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지 모르겠다. 자신이 출판사를 경영하면서도 작품집 한 권 내지 못 하는 처지가 얼마나 갑갑했을지를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이다. 본래 연극이나 음악회 초대권을 절대 받지 않는 게 내 소신이다. 선후배며 동기며 수두룩하지만 단 한 번도 공짜 구경을 해본 적이 없다. 그 쪽이 얼마나 열악한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꼭 내 돈을 내고 관람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비록 내가 부자는 아니어도 일 년 삼백육십날을 매일 가는 것도 아닌 터에 약간만 절약하면 그들의 노력에 자그마한 보답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나. 마찬가지로 책 또한 공으로 받는 것이 미안하기 그지없다. 그 책이라는 것이 더구나 소위 대박을 기대하기 어려운 수필일 때는 더욱 그렇다. 책을 냈다고 보내오는 것을 받으면 꼭 몇 권이라도 사서 지인들에게 나누기로 하고 있다. 사실 책을 보내는 관례가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기에 문우의 편지를 받자마자 망설임 없이 얼른 책을 주문했다. 그리고 그 책이 오늘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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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가정의 달을 음미할 에세이집, 「가족별곡」 출간


1). 다소 비감스러운 가족 중심의 수필집

수필가 이승훈씨가 5월 가정의 달을 앞두고 가족 소재 중심의 에세이집, 「가족별곡」(해드림출판사)을 내놓았다. 자칫 신변잡기로 비하될 위험성이 있는 가족을 소재로 에세이집을 묶은 데는 남다른 가족사의 애환 때문이다. 저자는 이 비감스러운 삶의 여진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작품마다 은밀하게 깔았다. 두 형제를 잃은 후부터 수필을 쓰게 된 저자에게 그 아픔만큼 생생한 소재는 없었을 것이다.

가족은 정(情)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족의 정(情)처럼 아름다운 휴머니즘은 없다. 가족의 정(情)은 인간의 가장 맑은 기운이요, 태고연(太古然)한 가치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니 우리는 춘사(椿事)를 당해 참혹한 고통을 겪기도 한다. 여기서 독자는 어쩌다가 눈물 한 번 훔치는데 그칠지 모르지만 저자는 비문을 쓰는 심정으로「 가족별곡」을 써왔다고 한다. 이는 저자가 가족을 사랑해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요, 사랑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저자는 10여 년 전, 다섯 살 위의 형과 두 살 아래 여동생을 거푸 잃었다. 저자 나이 불혹 직전이었다. 음주 운전자에게 뺑소니 사고를 당한 여동생은 석 달 동안 참혹한 중환자실에서 머물다가 마지막 눈물 한 방울 유언처럼 흘리며 떠났다. 뇌종양 말기였던 형은 두 해를 좀 넘게 버티다가 호스피스 병실에서 피폐할 대로 피폐한 채 역시 저자 곁을 떠났다. 이들의 그리움이 가슴에서 이랑지거나 참고(慘苦)를 겪던 형과 누이가 떠오르면 저자는 아직도 피톨이 역류하며 살이 떨린단다. 아내도 자식도 없는 미혼의 저자에게 당시의 슬픔이 온새미로 파고들었던 모양이다.

2. 가족의 사랑을 말하고 싶었다

두 형제를 잃고 저자는 가족의 사랑을 말하고 싶었다. 따라서 「 가족별곡」에서 저자의 모든 중정(中情)은 사랑한다는 외침이다. 특히 세상을 떠난 형과 누이를 향한 눈물 갈쌍한 외침이다. 아픈 줄 알면서도 자꾸 끄집어내듯 스스로 아픈 곳을 찔러 연단하며 희망을 다지는 모습이 짠하다. 꼭 가정의 달이 아니라 해도, 「가족별곡」의 이런 정서를 통해 가족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고 정리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수필을 문학적으로 비판할 때 신변잡기라는 표현을 흔하게 끌어들인다. 수필을 잘 모르는 사람의 몹시 궁색한 매도라 할지라도 저자는 여기에 휘말리지 않고자 나름대로 승화의 애를 썼다. 단순한 감정 배설이 아닌 순화된 감정의 애상미(哀傷美)가 함씬 배도록 어휘 하나 선택을 하는데도 마음을 기울였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토막생각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오래도록 여행하다가 난숙해서 돌아온 생각들로 채운 것이다.

지천명을 넘어서야 가난도 외로움도 사랑할 줄 아는 힘을 얻었다는 저자는, 「 가족별곡」의 출간이 새로운 삶의 변곡점이기를 희망하면서 형과 누이의 영전에 이를 바친다고 하였다. 또한 살아 있을 때보다 더욱 사랑하게 되기를 바란단다. 더는 아프지 않고 사랑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저자는 이번 책을 내면서 ‘가족 이야기는 길게 쓰는 만큼 아팠다. "글을 쓰다가 나는 자주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슬픔을 안추르고 치유하며 또 아픔만큼 그들을 사랑했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떠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난 그들에게 조금도 떨어지지 못한다. 살아가는 날이 종종 두려울 때도 있다. 10년 전의 고통이 어제 같은데 언젠가는 그와 같은 이별을 또 맞게 되는 삶이 순리이기 때문이다. 두려울 만큼 삶이 힘들 때는 오늘 하루만 생각한다. 멀리 보면 더욱 두렵거나 절망적이다. 어떻게든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면 희망이 보인다.’라며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함께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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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이승훈(李承勳. 본명:이재욱)씨는 1959년 전남 순천 별량에서 태어나, 뒤늦게 경남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였다. 이후 10여 년 동안 사법시험 준비를 하다가 형과 여동생을 잃고서 그만 꿈도 접었다. 군데군데 패인 가슴 속 허방을 디디며 걷던 어느 날, 우연히 수필과 인연을 맺은 그는 수필을 쓰면서 더욱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 또한 수필 앞에서 저자는 더욱 겸손할 수 있었으며, 더 나아가 자연과 인간의 미학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았다는 것이다.

수필은 저자를 전혀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다. 문학을 하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출판인으로 거듭나게 하였다. 문예지의 편집장 일을 하다가 또 출판사로 자리를 옮겨 끝내는‘ 해드림출판사’를 품었다. 지인들과 더불어‘ 테마수필’을 기획하여 꾸준히 발간해온 일은 저자에게 나름대로 커다란 의미가 있다. 또한, 지난해부터 저자는 수필전문지「 수필界」를 계간으로 발행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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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이라는 것이 대개 그렇듯이 골치 썩이고 어려운 책은 아니다. 하지만 펼쳐 들었어도 금세 뚝딱 읽어치우지는 못 하겠다. 몇 번이나 책을 내려놓고 눈을 감아야 했다. 가슴이 아렸다. 내용이 아프고 어두운 것도 있었지만 꼭 그런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책에는 내가 이미 읽었던 것도 처음 읽는 것도 있었으니, 그이의 가족사를 이미 다 아는 터에 새삼 그 슬픔에 매몰될 것은 없었다. 또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가슴 아픈 사연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다만 어린 시절의 그이가 보고 느꼈던 고향과 식구들, 그리고 수십 년 지난 지금에 와서 변하고 사라진 사람과 풍경들이 비끼면서 영화처럼 눈에 선하게 그려져 안쓰러움으로 다가왔다. 유독 그이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 모두 그이와 다를 바 없는 세월을 지나쳐오지 않았던가. 그러면서 잃어야 했던 것들 가운데도 절대 잃을 수 없는 사랑이랄까 정이랄까, 그 비릿한 운명의 냄새가 코끝에서 떠나지 않는다. 사느라고 바빠 눈이 핑핑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제대로 돌아보지 못 하는 식구들이요 가정이지만, 누군들 마음에 옹이처럼 박힌 부분이 없으랴. 그 생각으로, 대표격인 그이 마음을 헤아리자니 감은 눈을 이내 떠서 휘리릭 책장을 넘기기 쉽지 않았다. 숨을 가삐 내쉬고 들이쉬면서 그이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를 찬찬이 새겨보는 중이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가족에 대한 그 사랑과 그리움은 누구나의 이야기일 수 있다.
억지로 잊고자, 외면하고자 기를 쓰지 말아야지. 있는 그대로, 일어났던 그대로를 바라보고 그 때는 이해하지 못 했던 것이 이제는 이해되는 것을 내 몫으로 받아들여야지. 그러면 거기, 세월 지나도 흩어지지 않는 향기가 오롯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깨달을 것이다. 내 피붙이들의 정-그 무한한 블랙홀이 말이다.
그이의 책이 많이 팔리고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그이의 바람대로 다른 동료의 책도 세상에 나올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면 좋겠다.

by 아무니 | 2010/05/01 22:36 | 삶..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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